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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번째의 산책 / 눈 / 미완의 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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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번째의 산책 / 눈 / 미완의 풀

booktrain 2024. 4. 24. 13:19

스물여섯 번째의 산책

 

 

 

철로 연변

 

걸어가다 나는 솟아오른다, 뒤틀리는

백의민족의 혈관 속을 돌아 나오는

바람은 짐승처럼 울고 있는데

살을 벗어 던진

숲 속을 거듭 돌아 나오는

바람은 뜨겁게 울음을 놓는데

끝없이 펼쳐진,

이 명백한 약속의 땅에서 먹구름은 피어나는데.

 

얼음장을 딛고

자라온 풀뿌리는 더 자라다오, 팔다리를 휘저으며 날아가는

오늘도 이 무거움을 증명해다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향해 열려 있는가, 그리고

 

살아있는 풀벌레는 합창한다, 합창하라.

흘러간 철길에 스며있는

피의 얼룩은 침묵한다, 침묵하라.

 

불빛이 든다.

백의민족의 걸음걸이를 이어받은 당당한 별……

나는,

숨 가쁜 탄생을 예비할 때 무엇을 하는가?

 

스물여섯 번째의,

 

얼음장 아래로 흘러가는

강물이 닿는 곳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나는 노래하고

엄동의,

무너진 터에서 나무는 잎을 맺고 뿌리를 뻗치고

햇볕 같은 나라는 세워지고 국민들은 모여든다.

무성한,

풀벌레는 아직도 합창하고 또는 침묵하고

여기서도 나는 솟아오른다.

 

어느 일요일

 

내가 노래하는 것은, 노래의 귀

이전에 한 사내가 노래한 노래의 눈, 코와 또 입.

가장 고귀한 것은

팔뚝에는 따뜻한 핏줄이 고동치고

근원이신 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들이 살고 간

 

이 거룩한 땅!

 

철로 연변

 

빨리 달려온 열차는 빨리 끊어지고

느릿느릿

그러나 열차보다 더 빨리

이 막중함은 솟아오른다, 주름 접힌 물로써 언제든지 떨어지면서.

 

 

 

 

 

 

눈은 왔다.

불빛은 깜빡이고 열차는 달려가고

드문드문

발길은 끊어지고 자정이 지나도 눈은

왔다.

 

창문과 창문 사이

길과

길 사이.

 

나는

 

강변 국도 끝

버드나무 가지에 춥게 매달렸다.

 

무겁게 휘어진 등뼈를 찍으면서

눈 나리는 국도를 따라 흘러간 겨울이었다.

 

그리고

 

봄이 왔고 기다리던 나뭇잎은 무섭게 피어났다.

 

아무리 흘러도 흘러가지 않는

강물 같은 봄날은 그렇게 왔다.

 

 

 

미완의 풀

 

 

 

풀잎이 운다.

 

목청을 버리고 살아가는 자,

뿌리 뽑힌 나뭇가지가 사지를 펄럭이는 산허리, 핏물이 밴 사과 속을 보는, 혼자이면서 늘 혼자뿐인 그 아래.

 

 

이능표 시집 이상한 나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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