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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걷는 게 수레보다 좋구나 / 이인시선 본문

이인 著 ∥ 김의정 김수희 이은정 譯 ∥ 휴먼필드 刊 ∥ 신국판 216쪽 ∥ 10,000원 ∥ isbn 978-89-963888-1-4 93820
400년 전에 깨달은 느림의 미학, 느린 걸음으로 자연과 인생을 노래하다
근심 속에 거문고로
매화 노래 타다가
종이 장막에 향 사그라지면
팔을 베고 잠을 잔다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노래하는 이 시의 주인공은 일흔이 넘은 여성이다. 시인의 이름은 이인(李因), 명말 청초 시기를 살았던 화가이자 여성시인이다. 자(字)는 금시(今是). 혹은 금생(今生)이고 호(號)는 시암(是庵), 감산역사(龕山亦史), 해창여사(海昌女史) 등이 있다. 전당(錢塘, 지금의 항주) 사람으로 명 만력(萬曆) 39년(1611) 전후에 출생하였으며, 청 강희(康熙) 24년(1685)에 약 70여 세의 나이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는 시와 그림 모두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종이와 붓을 구하기 힘들어, 땅에 떨어진 감나무 잎이나 이끼를 종이 삼아 글과 그림을 연습했으며, 15, 6세가 되었을 때 항주 일대에는 이미 시인이자 화가로서 이름이 났다.
이화여자대학교 중국문화연구소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명대여성작가총서>의 첫 번째 책 《이인시선-천천히 걷는 게 수레보다 좋구나》가 출간됐다. 시인 이인은 명말청초를 살면서 망국과 망부로 이어진 고독한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뛰어난 시인이자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그녀의 시선집 《천천히 걷는 게…》는 제1부 천천히 걷는 게 수레보다 좋구나, 제2부 백발에 늘 장사의 근심을 품고, 제3부 봄바람은 늘 천 리를 함께 배회하네, 제4부 눈물로 쓴 시는 저승에 부치지 못하네, 제5부 봄빛을 모아 벼루연못에 들이고서, 제6부 내일 날씨는 맑을까, 흐릴까 등 모두 여섯 장으로 나누어 89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국내 초역.
이인의 삶과 작품 세계
이인은 모두 세 권의 작품집을 남기고 있는데,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은 그녀의 삶의 궤적을 고스란히 말해준다. 먼저, 《죽소헌음초》는 남편 갈징기와 결혼하여 고향 근처를 유람하고 북경에서 비교적 평화로운 생활을 구가할 때 지어진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생의 전반기에 쓰인 작품집으로 기행과 계절의 묘사가 중심이 된다.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지은 시들이 많으며, 남편과 유쾌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계절의 변화를 참신한 시각으로 읊은 것들이 많다. 작품집의 마지막에서는 명나라가 망하기 전에 갈징기가 벼슬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와 두 사람이 전원생활을 할 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늦봄의 궂은 비 暮春苦雨
꽃놀이하며 가는 봄을 좇는데
花事逐春歸,
계속되는 흐린 날씨에 차가운 비 이어지네
積陰連寒雨.
나막신 신고 작약 난간 돌보는데
著屐護葯欄,
창포는 얼마만큼 자랐을까
菖蒲長幾許.
― 《죽소헌음초(竹笑軒吟草)》에서
《죽소헌음초속집》은 명나라가 망하고 이에 충격을 받아 남편이 죽은 뒤의 심정과 생활을 노래한 것이 대다수로 애도와 전원의 흥취가 주된 내용이다. 특히 도망시(悼亡詩) 48수는 속집에서 가장 중요한 대형연작시로서, 이 시기의 그녀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남편을 애도하며 제2수 悼亡詩哭介龕 其二
장안 거리에 바퀴 묻어 지키고자 했건만
長安市上欲埋輪,
오늘 청동 낙타에는 가시덤불만 무성하구나
此日銅駝遍棘榛.
충성심만 남아있어 헛되이 눈물 흘리는데
只有丹心徒涕泣,
청사(靑史)에 현명한 신하 기록할 길 없어 한스럽다
恨無圖史記賢臣.
― 《죽소헌음초속집(竹笑軒吟草續集)》에서
《죽소헌음초삼집》은 속집에 이어 그 이후에 지어진 시들을 모아 간행한 것이다. 주제 면에서 본다면 인생의 철리를 읊거나 일상생활의 정취를 묘사한 시가 많다. 시의 제재와 주제들은 앞에서 이미 나온 것들이지만 세월이 흐르고 연륜이 쌓여 시에도 깊이가 느껴진다. 이 시집은 시간적으로 매우 오랜 시기에 걸쳐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만년으로 갈수록 내면에 대한 성찰과 사물을 바라보는 섬세하고 깊이 있는 시각이 돋보인다.
교외에서 지내며 제5수 郊居雜咏 其五
기꺼이 초가에 살면서 늙어가니
甘處蓬茅老,
문 닫으면 바로 은거로구나
閑門即隱居.
뜬 구름이 천지를 가리고
浮雲遮宇宙,
밝은 달이 언덕을 비춘다
明月照丘墟.
누각의 서화(書畵)는 굶주린 쥐에 쏠리고
閣貼遭饞鼠,
간직한 책들은 좀 벌레 배만 불린다
藏書飽蠹魚.
산골에서 구차한 삶 보전하지만
苟全丘壑裏,
은거하여 걷는 일이 편안한 수레보다 낫구나
隱步勝安車.
― 《죽소헌음초삼집(竹笑軒吟草三集)》에서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명대여성작가 집성, 총 15권 순차적으로 발간
<명대여성작가총서>는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과제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중국문화연구소(소장 이종진/중문과 교수)가 2009년부터 추진해온 ‘명대 여성작가 작품 집성-해제, 주석 및 DB 구축’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연구 책임을 맡고 있는 이종진 교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중요 작가를 중심으로 문학적 성취가 높은 작품을 선별해 일반에 알리기 위해 총서를 출간한다.”며 “이 작업을 통해 한국과 중국의 고전문학 내지는 여성문학 연구의 중요한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고 출간 의의를 밝혔다.
총서는 총 15권 분량으로 이번에 출간한 《이인시선(李因詩選)》에 이어 금년 중으로 《범호정시선(范壺貞詩選)》, 《沈宜修詩選(심의수시선)》 등 시집과 《오몽당집사선(午夢堂集詞選)》, 명대 여성 문인들의 문예이론과 교류를 엮은 산문선 《옥 부스러기를 모아 향 상자에 담고서》 등 네 권을 더 출간할 예정이다.
전체 목차
1.
천천히 걷는 게 수레보다 좋구나
癸未喜歸蕪園 其五 ‖ 22
계미년에 기쁘게 무원(蕪園)으로 돌아오다 제5수
暮冬對雪 其三 ‖ 24
늦겨울에 눈을 대하고 제3수
新春自歎 ‖ 26
새봄의 탄식
長征 ‖ 28
기나긴 여정
雪夜書懷 其四 ‖ 30
눈 내리는 밤에 정회를 쓰다 제4수
雨不歇 ‖ 32
비가 그치지 않아
山居 其三 ‖ 34
산에서 지내며 제3수
山居 其二 ‖ 36
산에서 지내며 제2수
入山閑咏 ‖ 38
산에 들어와 살며 한가하게 읊다
自慰 其八 ‖ 40
스스로를 위로하며 제8수
感懷 ‖ 42
감회
七旬初度日有感 其一 ‖ 44
칠순 생일날 감회에 젖어 제1수
郊居雜咏 其五 ‖ 46
교외에서 지내며 제5수
2.
백발에 늘 장사의 근심을 품고
聞豫魯寇警 ‖ 50
예노(豫魯) 지역의 도적 주의보를 듣고
有感 ‖ 52
느낌이 있어
西郊看花自歎 其一 ‖ 54
서쪽 교외에서 꽃구경하다 탄식하며 제1수
感時 其一 ‖ 56
시절을 느껴 제1수
憶昔 其五 ‖ 58
지난 날 생각하며 제5수
農家苦雨 其一 ‖ 60
농촌의 궂은 비 제1수
病起夜坐口占 其三 ‖ 62
병중에 밤에 일어나 앉아 제3수
郊居雜咏 其十二 ‖ 64
교외에서 지내며 제12수
吊虞姬, 時家祿勛同縉紳先生各有咏, 余耻巾幗餘習, 詩以壯之, 用原韻 其一 ‖ 66
우희를 애도한다. 당시 남편이 동료관리들과 각기 읊은 시가 있는데 나는 여자들의 문투가 부끄러워 시에서 장중하게 노래해본다. 원래 운자(韻字)를 사용한다 제1수
較書王玉煙訂盟於介龕矣, 後復敗盟, 簡笥中得其小似, 代爲解嘲. 其三 ‖ 68
기녀 왕옥연이 개감에게 언약을 했다가 나중에 다시 이를 깨뜨렸다. 편지상자에서 작은 쪽지 같은 것을 얻었기에 그녀 대신 비난을 해명한다 제3수
送家祿勛至常山賦別 其二 ‖ 70
남편을 전송하며 상산에 도달하여 이별을 읊다 제2수
嘲歌妓 其一 ‖ 72
가기(歌妓)를 비웃다 제1수
自慰 其四 ‖ 74
스스로를 위로하며 제4수
感懷 ‖ 76
감회
3.
봄바람은 늘 천 리를 함께 배회하네
暮春苦雨 ‖ 80
늦봄의 궂은 비
雪夜 ‖ 82
눈 오는 밤
元旦禮家祿勛像 ‖ 84
새해에 남편의 초상화에 예를 올리며
暮春 其二 ‖ 86
늦봄 제2수
七夕 其一 ‖ 88
칠석 제1수
長至 ‖ 90
동지(冬至)
村居四時樂 其二 ‖ 92
시골 사는 사계절의 즐거움 제3수
村居四時樂 其三 ‖ 94
시골 사는 사계절의 즐거움 제3수
中秋夜坐 其二 ‖ 96
중추절 밤에 앉아서 제2수
尋春 其一 ‖ 98
봄 경치를 감상하러 다니며 제1수
上元遣愁 其一 ‖ 100
대보름에 근심을 풀어 제1수
午日感懷 其一 ‖ 102
단오절의 감회 제1수
守歲 ‖ 104
해 지킴
新正咏雪 ‖ 106
설에 눈을 노래하여
午日 ‖ 108
단오
旅懷 ‖ 110
나그네 회포
東河道中 ‖ 112
동하 길에서
舟發漷縣道中同家祿勛咏 其一 ‖ 114
배로 곽현(漷縣)에서 떠나는 길에 남편과 함께 읊다 제1수
舟次獨流苦雨仍前韻 其二 ‖ 116
독류의 궂은비에 배를 정박하고 앞의 운을 따라서 제2수
癸未喜歸蕪園 其一 ‖ 118
계미년에 기쁘게 무원(蕪園)으로 돌아오다 제1수
鷲嶺山莊尋秋 其一 ‖ 120
취령산장에서 가을 풍경을 감상하며 제1수
4.
눈물로 쓴 시는 저승에 부치지 못 하네
寒食憶介龕有感 ‖ 124
한식날 남편을 추억하다가 감회에 젖어
七夕憶家祿勛 其一 ‖ 126
칠석에 남편을 생각하며 제1수
悼亡詩哭介龕 其二 ‖ 128
남편을 애도하며 제2수
悼亡詩哭介龕 其五 ‖ 130
남편을 애도하며 제5수
悼亡詩哭介龕 其十七 ‖ 132
남편을 애도하며 제17수
悼亡詩哭介龕 其十九 ‖ 134
남편을 애도하며 제19수
悼亡詩哭介龕 其三十六 ‖ 136
남편을 애도하며 제36수
悼亡詩哭介龕 其三十七 ‖ 138
남편을 애도하며 제37수
烽火危城, 身驚風鶴, 借居北郊李氏莊, 見有介龕遺畵兼題絕句, 爲乙亥年所作, 今十載矣, 不禁凄然, 以淚和墨依韻六絕 其一 ‖ 140
성이 위태롭다는 봉화가 전하자 나는 전란 소식에 놀라 북쪽 교외 이씨네 집을 빌려 살다가 남편이 남긴 그림과 거기에 쓴 절구를 보게 되었다. 을해년(1635) 작품으로 이제 10년이 지났으니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눈물 섞인 먹물로 그 운자(韻字)를 따라 절구 6수를 짓노라 제1수
憶昔扶櫬歸來有感 其三 ‖ 142
관을 매고 돌아온 지난 일을 회상하다 느낀 감회 제3수
掃墓 ‖ 144
성묘
吊梅 其一 ‖ 146
매화를 애도하여 제1수
5.
봄빛을 모아 벼루 연못에 들이고서
雨湖 其一 ‖ 150
비오는 호수 제1수
題雪蕉圖 ‖ 152
눈 속의 파초 그림에 쓰다
題山水畵 其二 ‖ 154
산수화에 쓰다 제2수
余寫畵一生, 竟不得筆墨之意, 鈍拙可知也. 自嘲一絶 ‖ 156
나는 한평생 그림을 그렸지만 끝내 필묵의 참뜻을 얻지 못했으니 그 둔하고 못남을 알게 되어 절구(絶句)를 써서 나 자신을 비웃노라.
題柳 ‖ 158
버들 그림에 쓰다
種梅 其一 ‖ 160
매화를 심고 제1수
山居 其一 ‖ 162
산에서 지내며 제1수
夏日偶憶梅花口占 其二 ‖ 164
여름날 우연히 매화 그리다가 제2수
夏日偶憶梅花口占 其五 ‖ 166
여름날 우연히 매화 그리다가 제5수
晩景 ‖ 168
황혼 풍경
郊居雜咏 其三 ‖ 170
교외에 지내며 제3수
吊梅 其五 ‖ 172
매화를 애도하여 제5수
畵梅 其二 ‖ 174
매화를 그리며 제2수
昔趙子昂仕元, 其子仲穆畵蘭, 有人題云‘今日國香零落盡, 王孫芳草遍天涯’, 後竟不復畵. 餘感其意, 聊賦四絶, 爲仲穆解嘲 其三 ‖ 176
옛날 조맹부는 원나라에서 벼슬을 했고, 그의 아들 조옹이 난초를 그렸는데 어떤 사람이 “오늘 난초는 다 시들었는데 왕손(王孫)의 방초(芳草)는 하늘가에 가득하네”라고 화제(畵題)를 쓰자, 그 뒤로 끝내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의 뜻에 느낀 바가 있어, 부족하나마 절구 네 수를 지어 조옹을 위해 변명을 하노라 제3수
昔趙子昂仕元, 其子仲穆畵蘭, 有人題云‘今日國香零落盡, 王孫芳草遍天涯’, 後竟不復畵. 餘感其意, 聊賦四絶, 爲仲穆解嘲 其四 ‖ 178
옛날 조맹부는 원나라에서 벼슬을 했고, 그의 아들 조옹이 난초를 그렸는데 어떤 사람이 “오늘 난초는 다 시들었는데 왕손(王孫)의 방초(芳草)는 하늘가에 가득하네”라고 화제(畵題)를 쓰자, 그 뒤로 끝내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의 뜻에 느낀 바가 있어, 부족하나마 절구 네 수를 지어 조옹을 위해 변명을 하노라 제4수
6.
내일 날씨는 맑을까, 흐릴까?
偶題楓落吳江 ‖ 182
단풍 지는 오강을 우연히 읊다
雪霽 其一 ‖ 184
눈이 개다 제1수
閑擬郊外看花 其一 ‖ 186
한가하여 교외로 나가 꽃을 보고자 제1수
舟發天津道中同家祿勛咏 其五 ‖ 188
배로 천진을 떠나는 도중에 남편과 함께 읊다 제5수
舟發百草灣, 次家祿勛韻 其二 ‖ 190
배로 백초만(百草灣)을 떠나며 남편의 시에 차운하다 제2수
舟發開河 ‖ 192
배로 개하(開河)를 떠나며
蕪園 其二 ‖ 194
무원(蕪園) 제2수
鄕居卽事 其三 ‖ 196
시골 생활을 즉흥적으로 쓰다 제3수
和家祿勛題畵 其四 ‖ 198
남편의 제화시(題畵詩)에 화운하여 제4수
月下 ‖ 200
달빛 아래
郊居 其三 ‖ 202
교외에서 지내며 제3수
冬夜遣懷 其一 ‖ 204
겨울밤 근심을 달래며 제1수
鄕居卽事 其七 ‖ 206
시골 생활을 즉흥적으로 쓰다 제7수
雪窗雜咏 其九 ‖ 208
눈 내리는 창가에서 이것저것 읊다 제9수
이인의 생애와 시세계 ‖ 210
역자 ■ 김의정 김수희 이은정
김의정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杜甫 夔州時期 詩 硏究」로 연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중국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저서로 「두보시선」(문이재), 「두보평전」(호미출판사) 등이 있다.
김수희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 및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南唐詞의 雅俗共存 양상 연구」로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이화여대 중국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은정
이화여대 중문과 및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이화여대 중국문화연구소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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